1부: 세레나데

 

지난 5월 초 국립발레단은 <세레나데와 봄의 제전>을 공연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 음악으로도 유명한 <봄의 제전>은 어떻게 공연될지 무척 궁금했어요. 고전과 현대 발레의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는 작품으로 어떤 요소가 음악사는 물론 무용사에서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 거리를 만들었을까요?

 

음악적 요소 역시 궁금한 작품이었습니다. <세레나데>는 알아보니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라는 합주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어요. 뉴욕시티 발레단을 만든 안무가의 첫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학교 재학 중 만든 작품이 아직까지 무대에 오르고 있다니 <봄의 제전>만큼 흥미로웠어요.

 

낯선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두 작품의 음원을 구입해서 미리 들어봤습니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은 흥겨우나 그답게 가슴 한 켠이 시려오네요. 발레 안무가들이 유독 좋아하는 작품을 만드는 그의 저력이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음악 속에 다채로운 감정이 들어 있는 게 아닐까 싶었죠. 또한 차이코프스키는 발레 자체도 좋아했다고 합니다.

 

 

 

[발레 <세레나데>의 막이 오르자마자 보았던 감탄사가 나온 첫 장면]

 

 

 

베토벤이나 브람스, 바그너 등의 작곡가의 뚜렷한 성향들이 강한 이들보다 차이코프스키와 같이 사랑스러운 멜랑꼴리한 음악은 말 없이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이들에게 더 좋겠지요. <세레나데>는 뚜렷한 스토리없이 아름다운 몸의 선을 마음껏 표현했다고 합니다.

 

작품 안에서 자주 뵙기 힘들었던 발레리나 김지영씨의 캐스팅은 기대를 한 층 더 깊게 만들었어요. 1악장의 서주가 나오는 가운데 조명은 점점 어두워지고 암전됩니다. 막이 오르면서 하얀 색의 나풀거리는 얇은 옷을 입은 발레리나 17명이 작품의 대표 포즈를 취하고 있어요.

 

배경은 심플하기 그지 없습니다. 무대는 오로지 무용수들에게 집중토록 아무 장식없이 <백조의 호수> 정경이나 <라 바야데르> 망령의 제국과 비슷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습니다. 푸른 조명의 조금 낮은 조도와 온도 속에 단지 유려한 포즈 하나로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더군요.

 

 

 

 

 

발레리나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선과 무용수들의 배치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1악장의 마지막 순간 등장하는 발레리노의 모습은 설렘을 동반하죠. 발레리노가 발레리나를 안으며 끝나고 2악장의 왈츠 선율에 맞춘 흥겨운 안무가 신납니다. 3악장은 의도적 마지막으로, 4악장을 세번째 순서로 바꾸었어요.

 

안무가의 의도적 조치로 1악장으로 시작, 2악장과 4악장의 흥겨움을 지나 3악장 'Elegie'에서 작품 특유의 색을 입힙니다. 아름답고 신나지만 시린 여운을 남기죠. 눈에 자주 띄는 안무 중 발레 기본 동작인 '1번 포지션' '앙 바'가 인상적입니다. 기본 자세만으로도 인상을 남기는 건 쉽지 않잖아요.

 

발레리나가 똑바로 서있다가 17명이 단 한 번 만에 발레 포지션을 잡는 일사분란함과 그저 서있는 자세만으로도 감정이 느껴지던 '앙 바'에서 내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선을 많이 보여주기 위해 '아라베스크' '깜브레'도 많이 볼 수 있었죠.

 

 

[뉴욕시티발레단의 세레나데 그리고 인터뷰]

 

 

2부: 봄의 제전

 

30분 공연 후 20분의 인터미션은 관객에 대한 배려였어요. <세레나데>에 대비되는 <봄의 제전>을 관람하기 위한 여백이었습니다. 1부가 아름다움과 신남, 그리고 시린 마음을 표현했다면, 이후에는 원초적이고 박력적이며 긴장감 넘치는 무용을 보게 됩니다. 이 대비의 구성은 인상을 남기는 데 효과적이었죠.

 

<불새> <페트루카>에 이어 또 하나의 획기적인 음악을 만든 스트라빈스키는 니진스키의 안무를 보고 실망했다고 합니다. 아수라장이 됐던 초연 역시 이해될 만 했어요. 이전까지 봐왔던 순백의 튀튀 발레복을 입고 나온 어여쁜 발레리나의 모습을 기대했던 관객에게는 도저히 친해질 수 없는 작품입니다.

 

구소련과 동유럽과 북아시아까지 아우르는 슬라브족의 제의를 참고해서 만든 이 작품은 봄의 신에게 올리는 경배를 담았어요. 마지막에는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형상화했습니다. 원래는 한 소녀가 바쳐진다고 했는데 국립발레단이 해석한 내용에서는 한 남성이 마지막 순간에 바쳐지는 것처럼 보였어요.

 

 

 

 

 

유튜브를 통해 볼 때는 마치 인디언 복장을 한 무용수들이 나오던데, 몸이 여실히 드러나는 원시 자체를 보여주는 의상이었습니다. 작품은 1 '대지에 대한 경배' 2 '제물'로 나뉘어 있어요. 마치 고대 어느 부족을 소환하는 듯한 피곳의 선율과 발레리노의 흥이 힘에 찬 춤으로 시작합니다.

 

'그랑제떼'처럼 하늘 높이 점프하는 건 아니지만 남성 무용수들이 독특한 리듬에 맞춘 '제떼'로 무대를 가로지르는 모습은 힘이 넘치면서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을 유도합니다. 무도를 추는 듯한 춤은 발레라기보다는 원시 부족 의식을 재현한 듯 했어요.

 

발레리나까지 합세하여 무대는 무용수들로 꽉 채워집니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이나 국립극장의 해오름극장보다 무대가 작은 LG아트센터에서의 공연은 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무용수들이 내는 힘찬 신음소리와 땀방울 하나하나가 눈에 보였습니다.

 

그들이 뿜어내는 원초적 에너지가 가슴으로 밀려 들어오고, 음악은 시종일관 의식에 따르는 긴장을 붙잡아 갑니다. 산제물이 바쳐지며 막이 내려간 이후에도 강렬하고 기괴한 리듬 위에 의식과 같은 춤이 잔상을 끼쳤어요. 마치 원시시대의 어느 부족을 만나고 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현 KBS교향악단의 지휘자인 요엘레비가 지휘했던 아틀란타 심포니의 <봄의 제전>]

by 왕마담 2016.07.08 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