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구글 이미지]

 

 

짜증과 울화가 치미는 한 주 아니 두 주를 보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어요. 프로젝트 2개의 일정이 공교롭게 맞물려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데, 둘 모두 삐걱대고 있습니다. 원인 또한 배려 없는 협력사나 사내 프로세스 때문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출입이 까다로운 관공서에 제품이 납품됐습니다. 요청 받은 지원 일정에 맞추어 방문했죠. 전산실에 들어가기 위해 엄격한 통제를 따라야 했습니다. 몇 일 전 개인 정보를 제공하여 출입등록을 해야 했고, 노트북은 물론 USB 메모리나 외장 하드 등의 저장매체 그리고 스마트폰 등은 가지고 출입하지 못합니다.

 

오전 일찍 갔더니 아직 당사 시스템이 설치될 공간은 공사 중이었어요. 실장하고 전원을 입전하기까지 제가 할 일은 대기뿐이었습니다. 기다리는 중에 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죠. 개인 소지품도 없어 우두커니 혹은 어슬렁댔습니다. 전산실에 들어가면 나가는 것도 까다롭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왔는데도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으니 슬슬 짜증이 나더군요. 오후 4시 가까이 되어서야 전원을 켤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제공되는 관리용 PC로 장비를 연결했어요. 제가 알던 메시지가 나오지 않고 'No disk'라는 글자가 깜박였습니다.

 

식겁했어요. 그건 시스템에 OS가 없다는 뜻으로 보였습니다. PC로 말하자면 Windows가 없다는 뜻이거든요. 부랴부랴 납품 진행된 당사 장비실에 전화를 해서 물어봤습니다. '~ 거기요~ 너무 급하다고 해서, 쌩자로 납품했어요'라는 말을 너무나도 태연하게 하더군요.

 

'쌩자로요???, OS도 없이???', 속으로 '이런 xx들 쌩으로 납품하면 그걸 어떻게 쓰라는 말이냐'고 되묻고 싶었습니다. 치미는 울분을 삭이며 '누가 그렇게 납품해달라고 하던가요?' 다시 물었어요. '사업부에서 급하다고 무조건 빨리 납품해달라고 했어요'.

 

전화를 끊고 사업부 담당자에게 확인했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시켰을지도 모르니까요. 왠걸 장비실이 잘못했다고 더 화를 냅니다. 멍했어요. 일반적으로 USB 메모리로 어렵지 않게 살릴 수 있으나 시스템이 있는 곳까지 가지고 들어갈 수도 없으니 '어찌해야 하나'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울화통이 폭발하기 직전이었어요.

 

생각하면 참 쓸데없는 일로 하루를 까먹었습니다. 게다가 일하는 환경 자체가 엄격하고 한 번 들어가면 저녁시간까지 공치게 되는 그곳에 또 들어와야 하니 그게 너무나 싫더군요. 바로 그때 또 다른 프로젝트를 하는 PM에게 연락 오더니 네트워크 작업을 야간에 해야 된다고 지원 요청을 합니다.

 

시기도 어찌 그리 잘 맞추는지 어이가 없었어요. 뭔 놈의 일이 그리 안 풀리는지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엄청난 일들은 아니지만 몇 건이 동시에 터져 마음이 조급해져 에너지와 시간을 뺏는다고 생각하니 의욕이 사라졌습니다.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갉아 먹는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는 회사와 연관된 사람들에게 화가 나더군요.

 

다른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짜증내고 화내고 미워하는 등'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마음을 가지면서까지 이렇게 일해야 할까 회의가 들었습니다. 집에 오니 밤 9시 정도가 되었는데 밤샘 작업이라도 한 듯 진이 다 빠지더군요. 결국 다음날인 목요일과 금요일까지 그곳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금요일 일을 마무리한 시간이 약 4시 정도 됐어요. 고속도로를 막히지 않고 가려면 지금 출발해야 할 텐데...... 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하지만 출발한 시간은 6, 비까지 오던 경부고속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이 되어 있었죠. 갈 수 없는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 도착하니 8 30,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2시간 30분이나 걸렸습니다.

 

주말을 앞두었기에 그나마 여유가 있었던 걸까요? 캔맥주 하나를 따서 내 책상에 앉으니 수요일과 목요일 금요일 모두 집에 들어오면 밤 8시에서 9시 정도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그 시간을 저녁으로 생각해서 책이라도 읽으려 했는데 몇 일 동안은 너무나 피로했습니다.

 

다시 힘을 낼 생각을 하지 못했죠. 뭔지 모를 패배감에 젖어 잠들기 일쑤였습니다. 화와 짜증으로 그만두고 싶었던 일은 어찌할 수 없었던 외부 상황에 대한 도피처로 생각했었던 듯 해요. 하고자 했던 약속이나 공부를 못했던 변명과 핑계를 그곳으로 모두 돌리고, 그렇게 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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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한 주 더 고스란히 그곳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마음을 그리 먹었는데도 힘들더군요. 일주일 째인 수요일부터는 연관된 사람들 모두에게 정체 모를 화가 났습니다. '힘들다'는 걸 일하는 환경, 사업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협력사, 2주 가까이 현장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담당 영업사원 등에 대한 불평이나 불만으로 터졌어요.

 

그렇게 힘든 건 저뿐만이 아니었나 봐요. 프로젝트를 총괄 진행 중인 타사 직원 또한 불평불만을 입에 달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함께 일해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죠. 회사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참 바쁠 때에 이틀을 잠적 해버렸습니다. 고객과 협의를 해야 할 담당자인 그가 없어지니 일이 진행될 리가 없었죠.

 

다시 홀연히 나타나서는 여기저기 짜증과 불평 그리고 '? 이건 제 일이 아닌데요?', '또 제가 해야 되요?' 등 무심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일해보고자 했던 마음이 사라지는 건 물론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그와 말하기 조차 싫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내 모습이기도 했어요.

 

저 역시 힘들다고, 진행이 어렵다고, 이런 프로젝트를 왜 하느냐며 여기저기 동네방네 떠들었습니다. 영악하게 내 잘못은 쏙 뺀 채로, 정말 힘든게 나의 개인 시간을 뺏기고 지겹다는 걸 말하지 않고 회사를 위하는 척, 이 일을 만든 사람을 죄인 취급하며,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그 친구 욕을 하고 있었죠.

 

2주 가까이 짱박혀 일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더 힘든 건 날뛰던 제 감정의 상태였습니다. 일의 진행사항이나 타인의 상태에 따라 일희일비했어요. 마무리가 보이니 이제야 평정심을 찾아 갑니다. 힘든 ''를 알아 달라고 이곳저곳 투정 부렸던 것들이 부끄럽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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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상 Dream

http://wangmad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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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안녕하세요. 왕지상입니다. 이 편지는 한 주 한 주를 보내면서 겪은 일들과 그 느낌을 매우 개인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자주 만나지 못하니 이런 소식이라도 나누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수 많은 스팸 메일 중 하나를 더 추가할지 모를 우려를 뒤로 하고 보냅니다. 이런저런 회신을 주신다면 더욱 좋을 일이지요. 그러나 저러나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요?

 

by 왕마담 2015.11.23 05:26